[MAGAZINE] "독립문 설화, 두 명의 수집가와 한 명의 건축가", 2017




사진 ⓒ 2017. (AROUND) all rights reserved.





그녀들은 철거 현장 바로 건너편의 초록색 대문을 가리키며 “이 집은 최소한 오늘만큼은 무너지지 않을 집”이라고 확고하게 말했다. 우리는 정말로 아무도 없는지를 거듭 확인한 후 삐거덕거리는 대문을 밀어젖혔다. 그곳엔 놀라운 정도로 고요한 정원이 숨어 있었다. 아직 죽기에 너무 이른 식물들이 무겁게 익은 햇볕 아래 누워 있었고, 붉게 녹슨 역기와 칠이 벗겨진 안락의자, 그리고 빛바랜 원형 테이블이 가장 완벽한 위치에 완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은 갑작스레 등장한 이방인들에게는 별 관심을 주지 않은 채로 단지 자신만의 일에 꾸준히 몰두하고 있었다. 그들이 몰두해 있던 일이란, 그들이 수십 년간 지속해왔던 그 일, 그 자리에 최대한 깊숙한 자국을 남기는, 그런 고집스러운 일이었다. 집회의 소음과 포클레인의 포효 속에서도 이 정원이 고요함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놀라운 집중력 덕분이었다.

집 안에서 수집가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부 벽면을 조금 떼어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봤다. 나는 집을 짓는 순서의 역순으로 해체하면 수월하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천장 몰딩을 떼고 바닥에 걸레받이를 떼어내면 비로소 벽을 떼어낼 수 있게 된다. 수집가와 건축가의 훌륭한 조합이었다.

(…)

어느새 시계의 초침처럼 뾰족해진 햇살은 어느 계단을 따라 서서히 이동하고 있었고, 계단을 지나, 우리의 얼굴을 지나, 계단과 담장 사이의 어느 공간에서 조용히 소멸해버렸다. 곧 정원의 담장 밖에선 덜덜거리는 트럭의 바퀴 소리가 들려오고, 실을 게 너무 많다고 투덜거리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밀의 화원은 그렇게 마지막 손님을 떠나보내게 되었다.

(…)

누군가는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바닥에 자신의 자국을 남기려 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너무도 쉽게 지워버린다. 자국이 지워지고, 기억마저 깨끗이 지워진다면 그곳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자국과 기억이 지워진 곳에서 설화는 힘겹게 피어난다.



글·그림 한승재. 「독립문 설화」, AROUND, 2017년 9월.